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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월의 끝자락 센치한 밤 아니고, 센치한 오후

오늘의 업무가 끝이 났다, 생각보다 아주 빨리. 주말이 왜 이틀씩이나 존재하는 것이냐 불평하며 따분한 이틀을 지내다가, 월요일 아침이면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며 일을 시작하며 내 온 열정을 쏟아 부어내던 그 어느 해가 문득 기억난다.  "이번 주말은 미쳤습니다!" Este fin de semana es una locura 라는 시선을 끄는 기사를 잠시 바라본다. 할로윈 임과 동시에 보름달이 뜨며, 서머타임 해제로 시간까지 바뀐다. 그리고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모든 게 어수선한 상황이기에. 어제 저녁 산책길, 둥그렇게 완성되어가던 그 달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간다. 



원치 않지만 주어진 여유에 문득 구글 사진첩을 들여다 본다. 새집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인생에 어떻게 모두에게 똑같은 기간의 방학을 선물 받는 거야?'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마치 방학특강을 듣는 학생 마냥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다. 밀렸던 회계 공부도, 앞으로의 새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도, 집에서 해먹는 요리도 말이다. 이 황금 같은 2주의 방학이 끝나면, 인생의 새 학기를 즐겁게 시작할 것 처럼. 



베트남전 미군 포로 중에서 가장 먼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낙관론자였다고 한다. 곧 포로 해방의 고지가 보인다며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살던 이들에게 그 작은 줄기마저 잘라 버려짐과 동시에 그들의 삶도 끝이났다. 7년 간의 긴 포로생활을 끝내고 살아 돌아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비관론자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길고 긴 시간 내 자신은 살아 나왔지만, 영혼은 잃어버린 낙관론자로 명하고 싶다. 



2주 후에 해제될 락다운이 한 달이 연장이 되고 두 달, 그리고 총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 동안 처음엔 긍정 후엔 부정, 나중에는 수긍, 그러다 또 체념, 감정이 요동치며 절정에 달했을 때는 연말까지 연장되겠구나 하며 포기하는 과정을 지나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서 잘 처신하고, 대응하고, 행동하는 게 바로 멘탈관리 라는 말을 절감했다. 가끔 통화하는 아빠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과 함께, 한국에서는 비용을 들여 정신수양을 목적으로 절에 묵언수행을 하러 들어가는데 나는 최저 비용으로 하는 것 아니냐는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어내려 해주는 아빠의 유쾌함에 가끔은 생각의 전환을 하고 힘을 얻게 해준 나날도 존재했다.  



락다운 초기에 나만의 기준에는 매 한 끼 열심히 준비하고 플레이팅 하던 그때 그 사진들에서 나 홀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내 그때의 희망과 즐거움이 묻어 나온다. 정성 들여 나를 위해 준비하는 한 끼 식사가 나의 원동력이었을까. 


게살볶음밥통밀 토르띠야


에프에 구운 닭다리 & 샐러드토마토 푸실리 파스타 & 레드와인

퀴노아 짜장밥 & 달걀국푸실리 크림파스타



또르띠야 피자월남쌈






파인애플 볶음밥라이스페이퍼 속 치즈고구마

태국음식이 그립던 날에 똠냥꿍 & 새우커리와 수박주스



통밀 당근케이크통밀 호두베이글


내가 좋아하는 Trapiche 와인까망베르 치즈구이


안녕, 10월의 끝자락이여. 붙잡지 않을게 언제나 그렇듯 후회는 없으니. 뒤도 돌아보지 말고, 훌훌 잘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