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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연이란 건 확률로도 계산될 수 없는 것 아닐까

11월 7일 토요일 아침의 Misti



인연이란 건 참 신기한 것이다. 5천만 국민 중에 평범한 한 사람이, 16,000km가 떨어져 있는 나라의 3천만 국민 중에 한 명을 만난다는 것은 더욱이. 약 3년 전에 리마에서 나의 고객으로 만난 50대의 아저씨가 있다. 아레키파에서 올라오신 분인데, 짧은 시간이지만 그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본인에게 딸 2명이 있는데, 연령대도 비슷하고 딸들이 한국에 관심도 많으니까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해주셨다. 너무 쑥스럽게도, 딸들을 위한 동영상도 찍어 달라고 하셔서 정말 부끄럽지만 짧은 인사말을 건네는 영상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몇 달뒤, 고객분, Palomino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 한 명이 리마에 올라가는데, 같이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하셨고, 거절하기 어려워 승낙을 했는데, 지금은 허물없이 내 생각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된 Angela를 만난 계기이다. Angela를 데리고 한국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밥 한끼를 하고, 오후에 다시 아레키파로 내려간다고 해 레스토랑 옆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서 라면과 과자를 사주어 버스 터미널까지 내려다 주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이 잘 맞았던 우리는 끝없는 대화를 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고 아레키파에 꼭 들리라는 신신당부를 받았다. 그리고 또 몇 달뒤, 리마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어 아레키파로 향했다. (혼자서 편도로 14시간을 운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사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미리 연락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레키파를 도착하기 약 5시간 전쯤 정말 오랜만에 그 고객분이 나에게 연락을 해주셨다.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는 고객분에게 사실 지금 아레키파 가는 길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셨다.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고  그리고 11월 11일이 본인의 생일이라고 다 같이 생일파티를 할 건데 꼭 들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14시간을 달리고 달려, 백색도시 아레키파에 도착을 했다. 만두와 함께 백색 도시를 거닐고, 그리고 Palomino 아저씨가 딸 Angela와 Maria가 나를 데리러 와주셨고, 그날 집으로 초대받아서 아레키파 전통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에는 와인과 케이크를 사서 방문했다. 친척들까지 모두 모인 그날 함께 모두 생일 축하 파티를 하며, 아레키파에서의 마지막 날을 좋은 추억으로 장식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또 다른 감동을 느꼈던 건, 어머님이 다음날 내가 리마로 운전해 돌아가는 긴 여정에 먹으라며 도시락까지 싸주셨었다. 


 

리마에 어머니와 Angela가 올라오셨을 때, 일이 너무 바빠서 밥은 못먹었지만, 근처 카페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나의 가족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거리적으로 멀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 듯하다. 변호사인 Angela는 스위스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을 했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 Arequipa로 결국 왔고, Angela가 자리를 비운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가족들이 모두 감염돼서 힘겨운 시간도 겪고 또 잘 극복해냈고, 어머님은 집 앞 슈퍼 옆에 작은 튀김가게를 여셨고, Maria는 내가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의 디자인과 마케팅을 맡을 예정이다. 작은 인연의 시작이 시간이 흘러가며 더 단단해져 가는 것 같다. 

 


추억하며 글을 쓰는 토요일 아침 11월 7일, 마침 Palomino 아저씨의 생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은 케익을 직접 만들어볼까. 우리의 이 신기한 인연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