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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죽인걸까? 아님 네가 이 겨울을 견디지 못한 거니

우리집에 잠깐 묵고 간 금어초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작은 화원이 있다. 이사 오고 나서 4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그 화원에 들려서 맘에 드는 녀석들을 데리고 왔다. 주인아저씨에게 물으니 이름은 스페인어로는 Boca de sapo로, 한국어로는 금어초라고 한단다. 개구리의 입처럼 생겨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거운 화분 4개를 양손으로 들고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느낌으로 설레며 돌아왔다. 이 녀석들의 취향을 검색해보았다. 목이 자주 마른 녀석들인지, 일광욕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늘 밑에서 쉬는 걸 좋아하는가. 금어초에 대한 탐색전을 마쳤다.

내방의 빈 구석에 자리 잡은 네 명의 친구들을 내 나름의 정성대로 보살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햇살을 주기 위해서 커튼을 열고, 해가 더 오는 자리로 시간마다 자리도 좀 바꿔주고. 겨울이 왔다. 쌀쌀함을 견디지 못한 친구들은 맥없이 쳐져만 갔고, 내 정성은 시간이 흘러가며 바닥이 드러났다. 짙은 꽃잎들은 색이 빠져버렸고, 그렇게 내 관심에서도 멀어져 갔고, 추웠던 7월 이곳의 겨울에 숨을 거뒀다. 

조금 정성을 더했다면, 살아날 기회가 아마 있었던 것 같다. 화사함을 한껏 내뿜으며 방 한편에서 존재감을 차지하던 녀석들이 시들어감과 동시에 왠지 나 마저도 축 쳐져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 희망이 없어 보이는 녀석들에게 관심을 꺼버렸다. 그러고는 바깥 테라스로 녀석들을 아예 쫓아버렸다. 왠지 내가 죽인 것만 같아서. 

 

식물에게 사랑의 말 한마디를 건네며 정성으로 돌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피어오르기 전의 꽃의 절정을 순간만을 취하고 싶은 사람도 있나 보다. 10월의 어느 토요일 늦은 저녁 장미를 사고 돌아오면서 나는 또 이렇게 나를 알아간다.

내 테이블을 며칠간 밝혀줄 장미 세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