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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때로는 맛이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나보다

하필이지 이불빨래를 했는데, 그게 마침 장마기간에 걸려 마르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때아닌 장마기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젖은 이불이 나인 것 같은 그런 나날이다. 요즘은. 

일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Pizzas, Burrito, Tacos가 적혀있는 허름한 1평 남짓한 가게를 매번 지나가다가 이번엔 멈춰 섰다.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주인아저씨가 너무도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온 손님처럼.  "Hola, Hermosa!"

이름을 물어본다. 아저씨의 영업스킬인가 보다. 아저씨가 나름에 호구조사를 이어나간다. 난생처음 보는 피자집 아저씨에게 오늘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보따리 꺼내듯 털어놓는 나. 지친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기다리는이 들어주는 이 없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 이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었나 보다. 허전함을 들켜버렸다. 아저씨는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말한다.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손님이 왔다. 아저씨는 그 손님에게도 이름을 묻는다. 영업전략이 발동되었다. 가브리엘라라고 한다. 대뜸, 가브리엘라에게 나를 소개해준다. 나는 Cesar, 얘는 에이미야. 가브리엘라와 인사를 나눈다. 나에게 이런저런 걸 묻던 아저씨는 이번엔 가브리엘라에게 피자를 준비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자기 얘기를 해준다. 미국에서 8년 동안 가족들과 살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남부에 살아서, 맛있는 부리또와 타코를 접했고 자기가 기가 막히게 한다고. 

 

내 피자가 먼저 완성이 되었다. 피자는 박스에 담겼고, 건네받기 전에 아저씨가 스무고개 하듯 대뜸 자기 이름을 나에게 물었다. "Cesar요!" 아저씨는 흐뭇해 보였고, 그렇게 통성명까지 했기에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 구실을 만들어줬다. 

 

젖은 이불이 조금 말라가는 것 같았다. 피자를 기다리는 그 짧은 기간에 말이다.

집으로 서둘러 올라와 피자를 먹었다. 피자는 맛이 없었다. 근데, 그날만큼은 맛이 중요하지 않았다. 위로받은 그 잠깐의 시간이 있었기에. 

힘들고 또 지칠 어느 날에 다시 그 집을 가야만 할 것 같다. 덜 말려진 이불을 바짝 말리러. 기가 막히다는 부리또를 먹으러 말이다. 

위로의 피자. 맛으로 위로하지 않아도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