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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네 구멍 가게와의 전쟁

 

해질녘, 만두

 

 

스페인어 bodega라는 단어는 와인 저장소라는 단어로 주로 쓰이지만, 이곳 페루에서는 '작은 식료품 가게'의 뜻으로 쓰인다. 한마디로 동네 구멍가게 정도쯤이라고 할까.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내에 보데가(bodega)가 5군데나 있다. 3월 중순부터 락다운을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개인 자가용은 쓸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보데가에서 구매를 자주 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한 1번 보데가 주인과 인사를 하는데 1번 보데가는 이번에 새로 오픈을 했다고 한다. 1번 보데가에서 겪은 일은 이러하다. 쓰레기봉투를 구매하려 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내일 들고 온다고 한다. 가격은 장당 30 centimos(100원)이라고 한다. 다음 날, 쓰레기봉투를 사러 다시 갔다. 재고는 있다. 하지만 가격은 50 centimos라고 한다. "네가 어제 분명 30centimos랬는데?"  겸연쩍게 '아 그래?' 대답하고는 30 centimos를 받았다. 

다음번은 옥수수를 사러 갔다. 특이하게 아레키파는 옥수수 껍질까지 포함해서 kg로 가격을 책정한다. 아마도, 옥수수 잎을 식재료로 많이 써서인지 가격에 포함되는 걸까. 무튼, 그 옥수수가 보통 1kg 3 솔 정도 하는데, 1kg이면 정말 작은 옥수수 2개 정도이다. 옥수수도 익은 상태가 달라서, 보통 열어서 확인을 하고 주인이 건네준다. 그렇게 주인의 손길을 거쳐 선택된 옥수수를 집에 와서 열어보니 웬걸 정말 큰 애벌레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그 옥수수를 손에 쥐고 보데가에 쫓아갔다. "이거 애벌레 좀 봐. 바꿔줘" 그 옥수수는 순순히 바꿔줬다. 

다음번에 옥수수를 또 사러 갔다. 이번에 다른 사람이 계산을 한다. 옥수수 1kg를 8 솔을 달라고 한다. 2배가 넘는 가격이다. "뭐라고? 이게 무슨 8 솔이야?" 8 솔이면 약 3000원이다. 옥수수 2개가 3000원이라니. 8 솔이면 동네 식당에서 점심 메뉴 한 그릇을 먹을 가격이다. 8 솔이라고 당당히 외치더니, 이번엔 줄어든 목소리로 가격을 정정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1번 보데가에 폭발한 계기는 사과를 사던 아침에 일어났다. 보통 마트에서 한꺼번에 과일을 사 오는데, 하필 그날 아침에 먹을 사과가 다 떨어졌고, 1번 보데가에 가서 급하게 사과 2개만 달라고 했다. 계산을 하고 뒤를 돌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사과가 담긴 투명한 봉지 안을 봤는데, 멍이 든 사과를 건넨 것이다. 그 쌓여있던 많고 많던 사과 중에서 멍든 사과라니.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세뇨리따, 진심이야?"를 외치며 정색하고는 사과 봉지를 건넸다. 바꿔준다는 걸 만류하고 돈을 받아 들고서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장 신선한 채소를 파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5번 보데가를 제외하고는 사실 나머지 보데가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여러 번 했고, 모두 발길을 끊었다. 먼길을 걸어서라도 가격표가 제대로 붙어있는 마트에서 내가 내 손으로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 

 

이곳에서 생활한 지 조금의 시간이 흘러 이러한 속임수들을 빠르게 눈치챌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딜 가든 거짓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속이려 하는 자들은 아주 정말 미세하고 또 미세한 찰나의 순간 정적 후에 상대방에 눈치를 보니까. 속임을 당하는 사람도 사실 그걸 안다. 착한 누군가에 의해서 그대들의 거짓말과 속임수가 묵과되는 것일 뿐.